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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림도예 김수산 도예가15년 한결같은 다기(茶器) 사랑


   
 
   
 
정직함과 부지런함으로 시장 평정

다기(茶器)만 전문으로 생산하고 있는 궁림도예 김수산 도예가(53)는 값싸고 질 높은 다기를 생산·보급함으로써 차문화 대중화에 많은 기여를 한 인물이다.

궁림도예는 전통 청자기법으로 다양한 디자인의 질 좋은 다기를 생산해 저렴한 가격으로 보급하고 있다.

궁림도예 다기의 가격이 저렴하다고 해서 품질이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 김수산 도예가의 청자 당초문 다기.  
 
김수산 도예가는 정성을 다해 다기를 만들고 A급 제품이 아니면 시장에 내놓지 않기 때문에 십수년간 반품이 한 번도 없었다.

이런 그의 정직함 때문일까? 지금까지도 궁림도예의 다기는 없어서 못 팔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궁림도예의 다기가 인기를 끌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1년에 10가지 이상 새로운 디자인을 끊임없이 개발하는 부지런함이다.

김 도예가는 정기적으로 서울과 부산 등지의 시장을 돌아보면서 변해가는 소비패턴을 파악하고 연구해 직접 새로운 디자인을 도안한다.

이렇게 매년 새로운 다기를 꾸준히 선보이기 때문에 궁림도예의 다기가 세월이 지나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궁림도예의 다기 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초창기 출시한 청자 당초문 다기다.

청자 당초문 다기는 당시에는 없었던 고풍스런 디자인으로, 차를 마시기에도 좋지만 인테리어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멋스럽다.

때문에 초창기부터 큰 인기를 끌어 지금까지 수십만 세트가 팔려나갔다.
한창 많이 팔릴 때는 두 달여 만에 1만 세트가 소비되기도 했다.

   
 
  ▲ 김수산 도예가의 청자 당초문 다기.  
 
지금의 궁림을 있게 한 다기인 셈이다.

김수산 도예가가 청자 다기만을 고집하는 이유는 청자의 크랙(균열현상)에서 나오는 음이온이 차의 독성을 제거해 주기 때문이다. 때문에 궁림도예에서는 청자 다기 이외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강원도 인제가 고향인 김수산 도예가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도자기를 만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서울로 올라가 직장생활을 했으나, 평범한 직장생활이 자신과 맞지 않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고…

그러던 차에, 여주에 살고 있던 고향 누님의 집을 방문했다가 청자를 사서 버스에 올라타는 승객을 보고 참 보기 좋다는 생각과 함께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을 느꼈다.

그길로 서울에 올라가서 사직서를 제출하고 무작정 여주로 내려왔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서울생활을 일사천리로 정리했다.
80년대 초, 여주에 내려와서 도자기공장에 취업해 도자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90년대 초 궁림요업을 창업하면서 다기 쪽으로 눈을 돌려, 15년여 동안 다기만 전문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요즘 김 도예가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데이터화해서 후배들을 위한 자료집을 만드는 일에 푹 빠져 있다.
그는 여태껏 작업했던 내용과 결과를 한 번도 빠짐없이 꼼꼼하게 기록해 놨다.

처음 도자기에 입문할 때의 어려움을 기억하며 후배들을 위해 경험에서 나온 데이터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있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도자기와 만나 평생을 도자기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김수산 도예가.

그는 “흙을 만질 때만큼 마음이 편안해 지는 때도 없다”면서 “도자기는 바로 나 자신”이라고 말했다.

숨이 떨어지는 날까지 도자기를 굽고 싶다는 김수산 도예가에게서 도자기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여주시민신문

이성주 기자  sj17@yjn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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