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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천호 대신면 구인재활의학과의원 원장대신 노인들의 사랑방 구인재활의학과의원

환자를 사랑으로 대하는 이시대의 진정한 ‘슈바이처’
“시설 측의 요청에 의해 처음 무료진료를 시작했는데, 이제는 봉사하면서 느끼는 기쁨을 잊을 수 없어 내가 먼저 찾아다닌다. 봉사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봉사하는 나도 기쁨을 선물 받으니, 오히려 나도 봉사를 받는 셈”

   
 
   
 


찾아오는 환자들을 항상 웃는 얼굴로 내 가족처럼 돌보는 시골 의원이 있다. 대신면 율촌리 창명여자중·고등학교 맞은편 구인재활의학과의원은 대신지역에 있는 노인들이 내 집처럼 편안하게 찾아와 진료를 받고 쉬다 갈 수 있는 병원으로, 주민들 사이에서 칭찬이 자자하다.

이처럼 대신면 주민들이 구인재활의학과의원을 사랑하는 이유는 2001년 이곳에 둥지를 튼 뒤 항상 따뜻한 마음으로 환자를 대하는 젊은 의사 백천호 원장(42) 때문이다.

병원을 찾는 노인들을 항상 웃는 얼굴로 내 부모처럼 모시고 있는 백 원장을 만나봤다.

   
 
   
 
-도시청년 시골에 터 잡다

▶ 백천호 원장은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서울 토박이다. 그런 그가 시골에 내려와 병원을 운영하게 된 것은, 대신면 옥촌리에 미리 터를 잡고 내려온 부모님 때문.

경희대 재활의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개원지를 찾던 중, 우연히 대신면에서 병원을 맡아 운영할 사람을 찾는다는 신문광고를 보게 됐다. 마침 부모님이 계신 곳이라, 바로 병원을 인수하고 여주에 내려오게 됐다.

도시 청년이었던 그는 2001년 5월 그렇게 여주에 내려온 뒤로 시골 노인들을 정성으로 돌보며 구인재활의학과의원을 대신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가꿔왔다.

처음 그가 대신면에 자리 잡을 때는 주위의 만류도 많았다. 보통 재활의원은 인구 10만 명에 1곳 정도 있는데, 대신면 인구는 1만 명도 채 안되니 말리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도 무언가에 이끌리 듯 대신면으로 들어왔다.

백천호 원장은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란 내가 한 번도 와 보지 못한 대신면에서 병원을 운영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면서 “운명처럼 무언가의 인도에 따라 이곳에 자리 잡게 됐다”고 말했다.

목사인 백 원장의 동생도 현재 대신면 옥촌리에서 조그만 교회를 개척해 목회활동을 하고 있다.

이제는 백 원장의 가족 모두가 대신면 주민이다.

-고구마, 옥수수와 함께 쌓은 정

▶ 백천호 원장이 7년여 동안 병원을 운영하면서 느낀 것은 시골의 따뜻한 정이었다.

병을 낫게 해 줘서 고맙다며 때가되면 고구마도 쪄오고, 옥수수도 가져오는 시골 노인들을 보면서 ‘이것이 시골 인심이구나’하는 것을 많이 느꼈다고…

백 원장은 “처음에는 시골에 내려와서 생활하는 것에 대해 인간적인 고민도 많이 했었는데 이제는 이곳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골 사람들과 정을 쌓다 보니 단골 환자의 부음을 들으면 그만큼 더 가슴이 아프다.

백천호 원장은 “주기적으로 진료를 받으러 오시던 어르신이 갑자기 발길을 끊은 얼마 후에 부음이 들려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는 내 가족이 돌아가신 것처럼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지역 노인시설 찾아 무료진료 봉사

▶ 백천호 원장은 환자들을 성심으로 돌보는 것으로 유명한 만큼 봉사활동도 열심이다.

백 원장은 주기적으로 에덴의 집, 희망의 집 등 지역의 노인복지시설을 찾아 무료진료봉사를 하고 있다.

재활의학 전공의로서 아픈 몸으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노인들을 두고 볼 수 없어 시작한 봉사다.

그렇게 정성으로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에덴의 집에서는 감사패도 받았다.

백 원장은 “시설 측의 요청에 의해 처음 무료진료를 시작했는데, 이제는 봉사하면서 느끼는 기쁨을 잊을 수 없어 내가 먼저 찾아다닌다”며 “봉사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봉사하는 나도 기쁨을 선물 받으니, 오히려 나도 봉사를 받는 셈”이라며 웃었다.

-많은 무기 가진 군인이 전쟁에서 이긴다

▶ 구인재활의학과의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 중 하나가 봉독요법 전문과정 수료증이다.

백 원장은 지난해 포천중문 의과대학교 대체의학 대학원에서 봉독요법 전문과정을 수료한 뒤 병원에서 봉독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이처럼 그는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의 본분에 충실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새로운 치료법을 배우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백천호 원장은 “무기를 많이 가지고 전쟁터에 나가야 이길 확률이 높듯이 의사도 병을 치료하는 기술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 그만큼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순수재활센터 만드는 것이 꿈

▶ 의사로서 백 원장의 꿈은 여주에 순수하게 재활치료만 하는 재활센터를 만드는 것이다.

사실 여주, 이천, 양평은 재활치료분야에 있어 사각지대다. 이천에는 재활의학과의원이 하나도 없으며, 양평에도 구인재활의학과의원과 같은 개인 의원 1개가 있을 뿐이다.

재활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 한 군데도 없는 것이다.

구인재활의학과의원에서도 노인재활치료, 장애재활치료만 근근이 하는 처지이고, 중풍 뇌손상, 언어장애, 뇌성마비 등의 재활치료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백 원장은 “여주에 재활치료 전문의원이 이 곳 한군데 밖에 없어 언어장애 재활치료도 하느냐는 문의를 자주 받는다.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원주나 서울의 재활센터를 소개해 주는 방법 밖에 없다”면서 “여주, 이천, 양평에도 제대로 된 재활센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치며

▶ “대학시절 스승님이 제자들에게 조차 항상 존대를 하는 등 사람을 존중하는 분이었다. 환자를 대할 때 열린 마음으로 항상 웃을 수 있는 것이 그 분의 영향이다”

백천호 원장에게서는 의사로서의 권위의식은 전혀 찾아볼 수 가 없다. 다만 환자를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만 보일 뿐이다.

환자를 사랑으로 대하고, 사랑하는 환자를 더 많이 치료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는 한편, 지역사회 봉사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는 백 원장에게서 이시대가 필요로 하는 진정한 슈바이처의 모습을 봤다면 과한 표현일까?

   
 
   
 

/사진=정은숙 기자 eunsook@yjns.net

 

여주시민신문

이성주 기자  sj17@yjn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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