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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택 현대일보 국장“기자는 움직이고 기사 쓸 때 가장 행복”

언론인으로서 걸어온 42년, 한결같은 외길인생

   
 
   
 
여주지역 언론인의 대 선배로서 고희를 맞이한 나이에도 아직까지 펜을 놓지 않고 있는 등 지역 후배 언론인들의 뒤에서 큰 힘이 되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현대일보 이보택(70) 국장이다.

이보택 국장은 65년 당시 8대 전국지의 하나였던 경향신문에 입사한 이래 지금까지 42년간 수많은 역경을 견뎌내며 한결같이 언론인으로서 외길인생을 걸어와 후배 언론인으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고 있다.

또한 본지 오피니언란 ‘이보택 기자의 뒤돌아보는 취재현장’이라는 코너를 맡아 꾸준히 글을 기고하는 등 언론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는 그 어떤 젊은 언론인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

42년간 기자생활을 해 오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한편, 예리한 관찰력과 날카로운 비판으로 사회의 어두운 면을 밝혀온 이보택 국장을 만나 그의 언론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언론에 처음 몸담게 된 계기는?
▶ 61년 사법경찰 시험을 본 적이 있다. 당시 60명을 모집하는데 1천800명이 지원해 높은 경쟁률을 보였으나, 나름대로 오랜 기간 열심히 준비했고, 시험도 잘 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험을 보고 난 뒤 어떤 사람에게 ‘누구 빽으로 왔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얘기인 즉은 당시 사범경찰 시험에 붙으려면 최소 경위 이상의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아무런 뒷 배경이 없던 나는 결국 시험에 떨어졌다.

이후 고학을 하면서 아르바이트로 신문 보급소 총무일을 보고 있었는데, 마침 경향신문에서 주재기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해 입사하게 됐다.

지금도 언론인으로서의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한 적은 없으며, 보람을 느끼면서 활동하고 있다.

-언론인으로서 지역 화합과 언론인 위상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한 것으로 아는데?
▶ 일반인들은 기자하면 거부감 먼저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일부 언론인들의 잘못 때문에 그런 이미지가 구축된 것도 사실이지만 대다수의 기자들은 사명감을 갖고 사회정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자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 쇄신을 위해 지난 1970년 여주군 언론인협회장을 맡았을 때 여주 주재기자, 지국장 등 23명과 함께 당시 여주경찰서 운동장에서 초등학교 축구대회를 개최한 적이 있다.

당시 14개 초등학교가 참가했으며, 축구공, 계란, 음료수, 빵 등을 준비해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행사 수익금으로는 불우이웃돕기를 한 적이 있다.

주위의 호응도 좋아 기자에 대한 이미지가 크게 향상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한 1991년 군·도의원 선거 이후 당락자간의 갈등이 심해 선거후유증이 사회문제화 됐었다.

지역의 언론인으로서 앞으로 선거 때마다 계속해서 홍역처럼 치러질 선거후유증을 두고 볼 수 없어, 연양리 여름경찰서 1일 명예서장 위촉을 계기삼아 군·도의원 선거 당락자간의 만남의 자리를 주선했다.

총 49명의 당락자 가운데, 개인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한 6명을 제외한 43명이 참석해 여주발전을 위해 힘을 모으기로 하는 화합의 장이 됐다.

당시 같은 날 여주로 발령 받은 이찬영 군수가 여주로 오기 전에 경기도지사에게 인사하기 위해 수원으로 갈 예정이었으나, 도지사가 “언론인이 선거 후유증 해소하기 위해 지역 정치인 화합의 자리를 마련하는데 나한테 오는게 뭐가 중요하냐”며 군수를 바로 여주로 내려보냈었던 기억도 있다.

이 외에도 첫 선거 이후 여주군의회 의원과, 경기도의회 의원간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계속돼, 군·도의원간 단합대회를 개최해 사회적으로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기사를 쓰고 가장 보람 있었던 사건이 있다면?

   
 
   
 
▶ 1990년 12월 3일 당시 여주읍 부녀회장을 맡아 보던 윤설자씨가 얼굴이 퉁퉁 부은 한 젊은 친구를 데리고 찾아왔다.

만성신부전증으로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는 25살의 청년이었는데 가정형편이 어려워 치료를 못 받고 있다며, 도움을 요청하는 기사를 써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안타까운 마음에 사회의 도움을 요청하는 호소기사를 써 다음날인 12월 4일자로 보도됐다.

기사가 나가자마자 안양에 사는 익명의 독지가로부터 돕고 싶다는 전화가 와 우선 급한 대로 300만원만 도와 줄 수 있느냐고 했더니 흔쾌히 수락했다.

통장을 확인하니 신우승 이라는 이름이 찍혀 있어 회사에 연락해 안양에 사는 신우승씨를 수소문했더니 조그만 전업사를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본인도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을 위해 큰 돈을 기꺼이 내 놓은 것이다.

이를 계기로 여주지역의 기관·사회단체에 모금운동이 확산돼, 1천670만원이라는 큰 돈이 모금됐다.

결국 큰 수술을 무사히 받고 병을 고쳤으나, 3년만에 병이 재발해 결국은 숨을 거둬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 일을 계기로 언론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과 언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새삼 깨달았다.

-본인이 생각하는 언론관은?
▶ 언론인은 무엇보다 주관이 있어야 한다. 또한 대의명분에 따라야 한다.

상황에 따라 주관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지 말고 옳은 일을 위해서는 욕을 먹는 일도 용기있게 추진해야 한다.

또한 한 사람으로 인해 다수의 약자가 피해를 입는다면 대의명분을 따라 언론이 나서서 제재시켜야 한다.

일례로 예전 관선 군수시절 여주군수가 새로 부임할 당시 내무과장으로 있었던 사람이 실력에 상관없이 자기 측근을 모두 여주군 주요 요직에 앉히는 비상식적인 인사를 단행했었던 적이 있다.

이로 인해 군청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는 등 인사후유증이 대단했었다.

당시 본인은 내무과장의 횡포를 막기 위해 조사를 하던 중, 과거 농정과장으로 있을 때 비리를 포착, 기사를 썼다.

새마을 사업 지붕개량을 위해 슬레트 지붕을 구매할 때 320원이면 살 수 있는 것을 350원을 들여 대량으로 구입한 내용이었다.

기사가 나가자 군수가 손수 인사를 다시 했고, 결국 내무과장은 이로하여 직위해제까지 당했다.

이후 내무과장이 찾아와 6개월 안에 복직하지 못하면 파면이라며 도움을 요청해 왔다. 차마 거절할 수 없어, 경기도를 찾아가 부지사를 통해 복직할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언론인으로서 외길인생을 살아오면서 힘들었던 점은?

   
 
  ▲ 이보택 국장은 지금도 기자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꼼꼼히 메모한다.  
 
▶ 경향신문에 근무할 당시 6개 시·군을 담당했었다. 당시만 해도 사건·사고 기사가 중요시 됐기 때문에 중앙 8대 언론사 중 타 신문에는 나온 사건 기사가 경향신문에 안나오면 시말서를 써야 했다.

때문에 6개 시·군 경찰서에서 살다시피 해야 했다. 그때 당시 시간과 스트레스에 쫓기던 긴장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너무 힘들어서 ‘내가 지금 뭐하는 것인가?’, ‘다른 직업은 없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막상 기사가 나오면 성취감과 보람으로 힘들었었던 것이 눈 녹듯이 사라지곤 했다.

또 유신시절 대규모 감원으로 인해 본사에 대기하던 시절이 가장 힘들었다.

당시 경향신문에는 전국 48명의 주재기자가 있었는데, 18명을 본사로 불러들여 대기시키고 나머지는 다 감원시켰다.

또한 정보부에서 중앙지 기자들의 동태를 파악하고 감시해 제대로 활동할 수도 없었다.

출근하면 차 한 잔 마시고 할 일없이 빈둥댈 때가 가장 힘들었었던 것 같다. 기자는 움직일 때가 가장 행복하다.

-앞으로 언제까지 글을 쓸 계획인지?
▶ 앞서 말했듯이 기자는 움직이고 기사를 쓸 때가 가장 행복하다. 몸이 허락하고, 사회에서 나를 필요로 할 때까지 계속해서 글을 쓸 것이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나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지역의 대 선배로서 후배 언론인들과 지역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 지역 정서에 맞게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그것이 여주의 발전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또한 후배 언론인들은 소신과 주관을 갖고 직무에 충실하길 바란다.

조금만 욕심을 줄이고 원칙과 대의명분을 따른다면, 언론인들이 밝은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견인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정은숙 기자 eunsook@yjns.net

이성주 기자  crusader216@yjn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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