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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상만 존재 인쇄기술의 요람 취암사 터 밝혀지나(?)혜목산 사지 유력…여주시 발굴 착수
지난달 29일 이항진 시장과 김윤성 북내면장, 시청관계자 등이 취암사 터로 추정되는 혜목산 사지를 답사하고 있다.
여주시는 고려 말 고승인 백운화상 경한이 입적하고 직지 목판본을 간행한 것으로 알려진 취암사 터가 혜목산 사지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발굴 작업에 착수했다.

여주시에 따르면 취암사(鷲岩寺)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불조직지심체요절을 저술한 경한이 입적하고 직지 목판본을 간행한 역사적인 장소이다.

국가사적 제382호 고달사지는 신라와 고려 왕실의 지원을 받은 사찰로, 고려초기에는 희양원, 도봉원과 함께 고려 3대 사찰 중에 하나로 인식될 만큼 대규모 사찰이었다.

혜목산(慧目山, 현 우두산) 일대에는 대찰이었던 고달사를 중심으로 여러 암자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에서 가장 주목되는 절이 혜목산에 있었다고 하며, 금속활자 직지와 관련된 암자가 취암사이다.

특히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여주목고적병록성책(1683) 등 문헌에는 취암사, 상원사, 고달사가 모두 혜목산에 있다고 기록돼 있다.

지금까지 심증은 있지만, 이를 증명할 확증 자료가 없어 취암사가 어디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대신면 상구리 산 11-4번지 일원 혜목산사지(慧目山寺址) 또는 산상사지(山上寺址)로 불리고 있는 절터에는 현재 지표상에 건물지 5개소, 석축시설, 각종 석조유물 등이 노출돼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단국대학교 엄기표 교수는 “현재 사지에 유존돼 있는 석조유물은 신라말기에서 고려초기에 걸친 어느 시기에 건립된 석조유물로 보이며 보물 제7호와 국보 제4호 승탑보다 먼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미뤄 “이 절터가 혜목산 아래에 있는 고달사보다 먼저 창건돼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사지는 정밀 발굴조사가 이루어져야 구체적인 유구와 유적 현황이 분명해지겠지만, 현재 상태로 보아 1동의 건물지 앞으로 승탑으로 추정되는 석조 유물과 기타 석조물이 함께 배치된 가람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당시 유력한 고승의 진영(眞影)을 봉안하기 위한 진영각(眞影閣)과 승탑을 함께 조성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조당집에 기록된 원감국사 현욱(玄昱)의 행적이 주목된다. 현욱은 구산선문 중 하나인 봉림산문을 개창한 심희나 이관 등의 스승으로서 높은 추앙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는 840년께 수도로부터 멀리 떨어진 혜목산 기슭의 암자로 거처를 옮겼으며, 이후 경문왕의 청으로 고달사에 주석하게 된다.

현욱이 혜목산으로 와서 처음 머물렀던 암자는 고달사지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현재의 혜목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사지로 추정된다.

이곳은 고달사 보다는 작은 암자였지만 현욱이 실상사(實相寺)를 나와 처음 선법(禪法)을 펼쳤던 공간으로 현욱에게는 중요한 의미가 있었던 곳이었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현재 여주시가 추진 중인 혜목산사지에 대한 정밀 발굴조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발굴조사를 통해 취암사명 명문기와가 출토된다면 금속활자 직지를 저술한 백운화상 경한이 입적하고 직지 목판본을 간행한 문헌상에만 존재했던 취암사를 증명하는 역사적인 자료를 확보하게 된다.
 
여주시 관계자는 “현재 발굴조사를 위한 토지소유자 사용승낙을 완료, 산지일시사용허가용역, 문화재청 발굴허가 등 조사를 위한 사전 행정 절차가 진행 중”이라며 “오는 8월 조사에 착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여주시민신문  news@yjn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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