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논단 칼럼
여주시민 행복수기 수상작(1)천국의 길목에서
글-김태욱

내가 진정한 행복의 가치를 두고 그 행복을 만끽하며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이곳은 천국에 소망을 품고 사는 노인들이 있는 여주시내에 위치한 노인요양원의 호스피스 병동이다.

‘호스피스’란 암 판정을 받고 치료를 포기한 사람들이 있는 곳을 뜻한다. 내가 이곳에 처음 오게 된 날은 2014년 1월 높디높은 하늘에서 하얀 눈이 내려 땅 위에 소복소복 쌓이던 날이었다.

그 날은 유난히도 날씨가 추웠다. 내 앞에 세워져 있는 것은 빨간색 벽돌에 아담하게 지어진 것으로서 보고만 있어도 차갑게 얼어있는 나의 마음을 따스하게 녹여주는 듯 한 훈훈한 느낌을 주게 하는 건물이었다. 건물 안으로 유유히 들어섰을 때 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암 판정을 받고도 웃음이 가시지를 않고 마치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자신들이 짊어져야 하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의 큰 짐을 나눠지고 난 후 가벼워진 짐으로 말미암아 마음속의 평안함 또한 서로 나누는 모습들 속에서 새 하얀 추위의 표면위에 거듭나 보이는 따스한 핑크빛 행복과 사랑을 보았기 때문이다.

꺼져가는 심지의 불씨와도 같은 자신들의 생명을 불행히 생각 하지를 않고 죽음의 문턱에 서서도 여유있는 웃음을 잃지 않는 노인들을 봤을 때 ‘어떻게 저렇게 죽음앞에서 의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노인들의 모습 속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송골송골 맺혀 있는 검버섯과 잘린 나무의 나이테와도 같이 한 올 한 올 만들어진 주름살에는 평생 동안 그림자처럼 당신의 옆에 따라 붙어 다녔던 희로애락이 섞여 있을 것이다.

할머니들께서는 처녀시절 앵두 같은 입술과 고운 피부로 뭇 남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을 것이며 할아버지들께서는 싱그럽고 허탈하게 웃는 소박함 그리고 주름 하나 없는 해맑은 모습 지니어 세상을 아름답게 했겠지? 하는 생각을 하노라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연민의 정이 치솟아 오른다.

마른 땅 질은 땅 신발이 다 닳도록 쉴 새 없이 걸어온 인생의 여정 마지막을 한 발 앞두고 쉬어 가는 이곳의 노인들은 어쩌면 이미 하늘의 천사가 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 때가 있다. 나는 매주 주일 성당미사가 끝나면 이곳에 계신 노인들을 만나러 온다.

내가 처음 와서 하는 일은 노인들의 자리를 깨끗이 청소하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기저귀를 갈아주며 목욕을 시키는 일을 한다. 내가 간절히 바라기는 여기 계신 노인들도 건강하신 모습으로 퇴원을 하셨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히 들었다.

하지만 살아생전에 퇴원을 하시는 분들은 아직까지 없었고 지금도 없다. 내가 이곳에 주일마다 올 때에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버린 노인들이 한 분, 두 분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슬픔은 이루 말 할 때가 없는지라 홀로 화장실 한편에서 몰래 울기가 일수였다. 나는 울 때마다 내 볼에서 타고 내리는 눈물이 노인들이 가시는 마지막 길에 큰 위로가 되었음 하는 마음 간절했다.

내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짜인 핏방울과 같다고 얘기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나는 이 할 때면 왠지 내 마음도 닦는 것 같아 기분이 상쾌해 진다. 그게 바로 내가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해야 하는 이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만 간암을 앓고 계시던 어느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할머니께서는 내게 한 많았던 인생의 곡절을 말씀해 주셨다.

“이보게 총각, 젊은 사람이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어. 힘들지는 않나?” “아뇨, 힘들기는요. 저는 지금이 최고로 행복합니다.”“내가 살아오면서 잊혀지지 않고 가슴에 응어리 져 있는 것이 있다네.” “그러세요? 어떤 일이 있으신 거에요?” “30년 전이었지. 나는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었네. 그리고 시어머니께 우리 아들을 맡기고 일을 하고 있었지.

그런데 어느 날 우리 아들이 베란다에 있던 쌀통위에서 놀다가 10층에서 떨어져 이 세상을 등졌네. 아직도 그 생각하면 후회가 막심하다네.” “그런 일이 있으셨어요. 유감이에요. 할머니.”“그런데 지금은 아주 홀가분하다네. 하늘나라로 갈 그 날이 다가옴을 느낄 때 마다 우리 아들을 하늘나라에서 볼 수 있다는 꿈에 젖어 있어. 아들이 죽은 뒤로 술에 연명하다가 지금의 병을 앓게 되었네.” 하시며 쓴 웃음을 자아내셨다.

할머니께서는 내게 또 말씀 하셨다. “할머니, 그건 할머니 잘못이 아니잖아요. 운명이 그렇게 만든 거라고 생각하심 안 될까요? 할머니 그런 생각 하지 마시구요. 오래 사셨으면 좋겠어요.”“그런가? 그럼 자네 인생을 내게 좀 빌려 줄 수 있겠는가?”하시며 내 말이 부질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셨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할머니께 위안이 조금이나마 됐으면 했다.

무색투명한 유리잔에 김이 서려 유리잔에 비추인 오색찬란한 불빛이 희미하게 아른거리는 것과도 같은 옛 기억을 떠올리신 할머니께서는 참고 있던 눈물을 이내 터뜨리고 마셨다. 그리고는 쓰디쓴 인생의 서러움 나부껴 호두 껍데기과도 같이 주름 만발한 작고 따스한 손으로 내 손을 살포시 잡아 주셨다. 정말인지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간절히 와 닿았다.

하지만 그 할머니께서도 2개월 후 당신의 빈자리를 채우시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 얼마나 죄책감이 크셨으면 남은 평생을 술로 연명하시다가 간암말기까지 오셨는지...? 내가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대보지는 않았지만 할머니의 마음을 십분 헤아릴 수 있었다.

자식은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지만 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본 기억이 있다. 남았던 세월이 얼마나 한이 맺혔을까? 하는 생각의 서글픈 마음 가실 줄을 몰랐다.

그리고 거동이 불편하시고 췌장암으로 인하여 항상 고통 받으시던 할아버지의 목욕을 시켜드리며 나눈 대화도 있다. 할아버지께서는 내게 지긋이 말을 건네셨다. “내가 여기 온지 3개월이 됐는데 자네같이 젊은 사람은 처음이야. 자네 복 받겠어.”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께 공손히 내 자신을 숙이며 말씀드렸다.

“할아버지 저는 여기 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생활 할 수 있다는게 큰 복이에요. 이만한 복이 또 어디있겠어요.”“생각하는 것도 자네 얼굴처럼 이쁘구만.”“할아버지께서는 몸이 힘드시지만 저는 가끔 마음이 힘들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그랬구만, 그럼 마음이 힘들 때는 이 늙은이한테 다 얘기 해. 나는 자네 덕을 이렇게 보고 있는데 나도 자네의 마음을 돌봐야 되지 않겠어.” 하시며 생긋이 웃음을 자아 내셨다.

할아버지께서는 4개월 후 세상의 모든 괴로움과 슬픔을 모두 벗어 버린채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정이 들었던 노인들의 빈 자리를 볼 때면 마음속이 착잡해져 시간을 다시 되돌리고 싶지만 이미 기차는 떠나가고 신작로에 먼지만 자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재학을 하며 자그마한 전자제품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나는 월급날이 되면 노인들에게 약소하지만 먹을 것을 사드리고 있다. 그와 같이 노인들에게 작은 성의를 베풀고 나면 내 마음은 따스한 봄날에 피는 진달래꽃과 같이 화사해진다.

나는 노인들을 모시며 겸손을 알게 되었다. 나 자신이 낮아지고 마음속에 온갖 욕심이 사그라지니 이처럼 마음이 편할 길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노인들과 함께 산책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나에게 너무 따스할 수가 없다.

푸른 하늘 아래로 생긋한 꽃바람 콧등을 스치며 꽃 내음 풍길 때 노인들과 함께 하는 행복한 마음 가실 줄을 모른다. 인정 많으신 분들의 자그마한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며 그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지혜를 듣고 또 들었다.

노인들은 지혜가 많은 고로 노인의 죽음은 불타는 도서관과도 같다는 말을 어디에선가 들은 기억이 있다. 나는 지금 타들어가는 도서관 한 곳,한 곳을 보고 있는 것이다. 불을 꺼야하는 극한 상황에서도 말이다. 바라보고 있어도 불을 끌 수 없는 나 자신이 비겁하다는 생각도 여러 번 해봤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하늘이 내게 불을 끌 수 있는 능력만 주신다면 나는 한 평생을 타들어 가는 도서관의 불을 끄며 사는 데바치고 싶었다. 이루어 질 수 없는 소망이지만 그래도 내가 가치 있는 곳에 소망을 두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뿌듯함을 느꼈다.

비록 이 곳에 계신 노인들이 지니고 있는 희망이 푸른 하늘의 태양빛과 같은 찬란한 희망이 아니고 그저 밤 깊은 산 속에서 빛나는 반딧불과 같은 작은 희망이지만 그것 또한 희망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하기에 노인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을지라도 노인들을 돌보고 있는 나는 노인들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고 마지막 순간까지 만이라도 노인들의 곁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노인들 중 어느 한 분이 이 세상을 떠나시고 난 후 차가워진 밤거리를 홀로 거닐 때가 있었다.

하늘에 떠 있는 맑은 별빛들 바라보고 있노라니 눈물 한 줄기가 하염없이 내 볼을 타고 흘러 내려오기 시작했다. 눈물의 의미는 아마도 내 마음속에 묻어놓은 노인들의 갈급한 영혼들에게 뿌려주는 단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본 하늘에 맑은 별빛들은 내가 있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음속에 근심과 욕심들을 모두 벗어버리고 해맑은 웃음 머금고 이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비춰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푸른 잎사귀가 나뭇가지에서 떨어져도 푸르름 그저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죽은 잎사귀가 아닐 것이다.

몸은 죽었으나 영혼은 살아있듯 말이다. 그런고로 노인들께서 이 세상을 떠나실 때 그분들의 넋을 달래려 나는 방 한편에 홀로 무릎 꿇고 앉아 조용히 기도를 해드린다. 힘을 다하여 기도를 해드리는 것만이 슬픔도 아픔도 없는 영원한 기쁨만이 존재하는 천국에 무사히 당도하시게 하기 위한 노인들에게 베풀 수 있는 마지막 효행이자 선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이 순간 생각해보게 된다. 더울 때는 그늘을 마련해 주고 비가 올 때는 비를 가리워 주고 다리가 아플 때는 앉게 해주고 겨울에는 땔감이 되어 주기까지 한다. 남을 위한 진정한 헌신은 아무조건 없이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거저 주는 것이다. 게다가 내가 열정을 바치고 있는 대상은 생명이 점차 점차 소멸되어가고 있는 노인들이기에 그 가치는 그 무엇보다도 클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나는 나 자신 스스로를 채찍질 하며 마음을 다지고 또 다지고 있다. 이 곳에 있는 노인들이 마음 편히 천국으로 들어서실 수 있도록 꿋꿋이 이 세상의 끝에서 천국으로 들어서는 길목을 지키겠노라고 말이다. 나에게 인생의 마지막을 미리 보게 해주는 이곳이야 말로 내게는 천국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그야말로 가시밭에 홀로 피어있는 장미꽃과도 같은 곳이라고 해야할까?

이곳은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현재 오래된 것에 대한 귀중함을 알고 있다. 책이 오래되면 종이는 누렇게 변색되지만 귀한 가치는 그 색깔에 고스란히 베여 있는 것이고 오래 묵은 포도주의 가치가 더 고귀한 것이다.

나는 진정으로 이 세상에서 귀하고 값진 보석을 소유한 사람이 된 것 같다. 아니, 값으로는 매길 수 없는 그 이상의 존귀함과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나는 오늘도 행복한 사람이다. 노인들은 사람이 살아가는 때를 따라 아름답게 인생길을 걸어왔을 것이다.

사람이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가듯 말이다. 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흐르면 바닷물이 이루어지듯 이 세상보다 더 넓은 천국을 눈앞에 두고 있는 노인들의 기다림은 세상고락간 겪어보지 못했을 크나큰 영광을 기다리는 설렘 그 자체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인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큰 곳에 있지 않음을 알았다. 노인들의 간절한 바램은 나도 모르는 사이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에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닌 죽음에 희망을 두고 있는 노인들을 보노라면 너무나도 가엽기 이를 때 없다.

아직은 죽기에 너무 아까운 어르신들이다. 내 바램은 항상 지혜로운 어르신들 모두가 살아계셔서 이 세상을 희망의 길로 인도하여 주셨음하는데... 나의 간절한 희망이 있다면 구름 한 점 없는 푸르른 하늘 높게 떠 있고 청아하게 흘러내리는 시냇물 곁에서 참새들 떼 지어 소리 높여 지저귈 때 노인들과 함께 꽃구경 한 번 가고 싶다.

 

여주시민신문  news@yjns.net

<저작권자 © 여주시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여주시민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